안녕하세요! 쓸지식입니다.
오늘부터 일주일동안 성폭력 혐의로 자살한 박원순의 재보궐선거가 이루어지는 서울의 시장 후보에 대하여 한 사람씩 분석해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첫번째 주자. 바로 안철수입니다.
#1. 안철수
1986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고, 이후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학과 생리학 교실에서 기초의학을 전공했습니다.
이후 서울대 의대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1991년 V3라는 컴퓨터 안티 바이러스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으며 이는 국내에서 최초로 개발된 백신 프로그램이자 상용 소프트웨어입니다.
이후 프로그래머로서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했고, 성공한 벤처기업가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2005년 안철수연구소 CEO직에서 물러난 뒤 KAIST 교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을 지냈으며 이러한 다채로운 이력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관심을 받았고, 이후 시골의사로 유명한 박경철 작가와 방송인 김제동과 더불어 청춘콘서트를 진행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높은 지지를 얻게 되어 2012년 9월 19일, 정치권에 입문하게 됩니다.
#2. 정치 족적
#2-1. 양보의 아이콘
안철수는 여야 정치권에서 정계 입문 제의를 많이 받아왔습니다. 젊은층의 지지로 인해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서울특별시장으로 출마할 것을 제의한 적도 있고, 참여정부에서 정보통신부 장관직 제의를 받은 적도 있으며 청와대 수석, 국회의원 출마 제의 등등 종류별로 다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죠.
2011년 안철수의 서울시장 선거 출마 여부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던 9월 4일에 주요 언론사들은 여론조사를 실시했고 모든 여론조사에서 안철수의 지지율은 압도적이었지만 대화 끝에 후보를 박원순으로 단일화했음을 발표했다. 안철수는 단일화를 발표하며 아래의 말을 남기기도 합니다.
오늘 존중하는 동료이신 박원순 변호사를 만나서 그 분의 포부와 의지를 충분히 들었다.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하면서 시민사회 새로운 꽃을 피운 분으로서 서울시장을 누구보다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아름답고 훌륭한 분이다. 저에 대한 기대도 우리 사회 변화의 열망이 저를 통해 표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중한 우리 미래 세대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격려하겠다. 지금까지 심정적으로 가장 오랫동안 이해해준 박경철 원장님께도 감사하다. 단일화에 대한 아무런 조건도 없다. 출마 안 하겠다. 방금 말씀하신 대로 꼭 시장 되셔서 그 뜻 잘 펼치시기 바란다.
#2-2. 당선과 새정치민주연합
2013년 4월 24일 실시된 노원 병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60.5%의 득표율을 얻어 당선된 안철수는 안철수는 2013년 11월 28일 국민과 함께하는 새정치 추진위원회(새정추)의 출범을 알립니다. 2월에는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신당창당작업에 나섰다가 3월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전격적으로 제3지대 신당창당을 선언하여 3월 26일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하고 1기 공동대표에 취임하였습니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은 2014년 7월 재보선에서 참패했으며, 이후 대표직을 사퇴하게 됩니다.
#2-3. 국민의당 창당
2015년 12월 13일경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안철수, 김한길, 천정배 등이 중심이 되어 2016년 2월 2일에 창당하였습니다.
영문이름은 "The People's Party"로 2016년 1월 1일부터 1월 6일까지 국민들을 상대로 당명을 공모하였으며, 당명 이름을 "국민의당"으로 확정하게 됩니다.
#2-4. 대선 출마
2017년 3월 20일,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펙트 스퀘어에서 "공정·자유·책임·평화·미래의 가치를 수호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제19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합니다.
이후 치러진 당내 경선에서 손학규, 박주선과 겨루어 국민의당 제19대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으며 대선 후보 선출 직후 지지율이 급상승하여 각종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한 자리수 차이를 보이면서 양강 구도가 형성되었으나 이후 단설유치원 발언 논란, TV토론에서의 부진 등으로 인해 계속 지지율이 하락하였고 결국 5월 9일 치러진 대선에서 21.4%를 득표하여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에 이은 3위로 낙선합니다.
#2-5. 서울시장 낙선
2018년 4월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서 민선 7기 서울특별시장 출마를 공식 선언하였습니다. 온종일 초등학교 도입, 서울시 뉴타운 준공영개발 추진, 서울 전철 57km 구간 전면 지화화 등 다양한 공약을 내걸었으나, 자유한국당 김문수 후보에 이어 이번에도 3위로 낙선하게 되며 이 패배로 정계 입문 5년 9개월 만에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밝히게 됩니다.
#2-6. 정계 복귀
2020년 1월 2일 안철수 전 의원이 1년여간의 해외 체류 생활을 마무리하고 국내 정계 복귀를 2일 선언합니다. 차기 대선주자군에 속하는 안 전 의원의 복귀에 따라 분당 사태를 맞은 바른미래당의 진로와 당권구도, 그리고 중도와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 움직임이어떤 영향을 받게 됩니다.
#2-7. 서울시장 재도전
2020년 12월 20일 안철수 대표는 차기 대통령 선거를 포기하고 “제가 대선을 포기하고 서울시장 출마 결심을 한 배경을 이해해주시길 바란다”며 “반드시 저는 선거에서 이기고 좋은 시정을 통해 정권 교체의 교두보를 확보하겠다”며 서울시장 출마 의사를 밝혔습니다.
#3. 정치적 성과
#3-1. 거대 양당 체제에서 다수당 체제로
2016년 3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통합"을 하자는 식의 발언을 하자 김한길, 천정배 등은 통합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안철수는 야권통합은 없다면서 통합 제의를 거부하였고, 결국 통합은 무산됩니다.
이후 치러진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선거 전 여론조사와 달리 38석이라는 큰 성과를 거두게 되었고, 16년 만에 여소야대, 20년 만에 3당 체제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안철수 후보의 성과는 인정되어야할 부분입니다.
#3-2. 코로나-19 의료자원봉사
안철수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자 대구에서 의료봉사를 하게 되는데요.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이런 자원봉사는 여야를 떠나 많은 국민적 지지를 받게 됩니다.
4. 정치적 과오
#4-1. 새정치
안철수 의원은 '새정치'를 자신의 정치적 명분으로 삼았지만 정작 그의 새정치가 무엇인지는 2020년을 기준으로 한 지금도 모호한 상황입니다.
안철수는 TV프로그램을 통해 새정치를 이렇게 정의한 바 있는데요.
새정치는 낡은 정치와 싸우는 것이다. 정치는 세상을 바꾸는 일인데 오히려 세상이 바뀌는 것을 막고 있다. 새정치는 세상 바뀌는 것 막는 기득권 정치와 싸우는 것이다
국민의당 실험으로 거대 양강 구도를 깨는 데는 성공했으나, 국민의당이 다른 정당과 비교했을 때 뚜렷한 차별점을 보여주는 데 실패함으로써 이도저도 아닌 정당이 되고 맙니다.
#4-2. 소통
동료들과의 의사 소통이 거의 없었다는 비판을 오랜 시간 받아오고 있습니다.
금태섭 의원은 회고록인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에서 그동안의 에피소드를 여럿 공개했는데요. 그의 회고에 따르면 안철수 당시 무소속 대선 후보는 캠프에서 일하던 사람들과 소통이 안 돼 호흡이 맞지 않았고, 안철수 후보와 사적으로 절친한 사이일 뿐 캠프의 정식 멤버도 아니었던 박경철 원장과 거의 모든 문제를 상의해서 결정하는 것 같았다고 밝혔으며 금 의원은 박경철 원장을 비선 실세로 표현하며 강력하게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4-3. 부족한 리더십
결과적으로 그의 좋게 말하면 신중함, 나쁘게 말하면 우유부단입니다. 그래서 비판하는 세력에게는 간잽이, 간철수라는 멸칭으로도 자주 불리죠.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나은 고영욱 발언과 과거 행적들 (0) | 2021.03.02 |
---|---|
박혜수 학폭 논란 총정리 (0) | 2021.02.22 |
후쿠시마 강도 7.1 지진 (0) | 2021.02.14 |
문준용 네줄 요약으로 1,400만원 지원금 수령 (0) | 2021.02.10 |
바티칸 킹덤 마왕 전세계 실체(feat. 황하나) (0) | 2021.02.05 |
댓글